가곡, 아리아

[스크랩] 베르디의 불후의 명곡- 에르나니 엘비라의 아리아 외 2곡

문화사랑 2006. 6. 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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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오페라 <나부코>에서 장외 만루 홈런을 치고, 네번째 <롬바르디>로 3타점 3루타를 친 베르디 ..
그 여세를 몰아 벨칸토 오페라의 화려한 정점을 기념하게 될 다섯번째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에르나니<Ernani
> 무대를 스페인으로 넘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스페인과 이태리는 종교적인 이유인지 무척 가깝습니다. 두 나라 사람들은 약간의 난처함은 발생할지언정, 자국의 언어로 말해도 상대방이 알아듣는다고 하죠. 그러니 뭐 스페인의 정서나 이태리의 정서나 그게 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1843년의 두 경기에서 홈런을 포함해 7타점을 올린 다음이니 이제 이것 저것 눈치볼 것이 없기도 합니다. 불과 1년 후인 1844년, 베르디는 졸지에 이태리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가 돼 버렸으니까요.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그때까지 이태리 오페라를 대표하는 벨칸토 영역에서 확실한 자리를 만들기로 작심을 한 듯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남녀간의 사랑과 질투와 복수와 피냄새를 적절하게 버무려, 화려한 독창들이 난무하는 <에르나니>를 만들었습니다.

 <에르나니>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촛불행진을 이루어 베르디의 숙소까지 밤이 새로록 베르디를 연호 했다고 하니, 그야 말로 대단한 인기몰이 였을 겁니다. 이젠 베르디에게 휴식은 없습니다.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작곡 의뢰로 인해 돈은 무지하게 많이 벌었지만 그의 피곤한 머리를 뉠 새가 없던 것이지요. 하긴 30대 초반의 젊디 젊은 홀아비로서는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말입죠. 그의 바쁜 일정은 베르디에게 오페라에 대한 심각한 고뇌없이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이 만듭니다. 그리하여 범작 혹은 졸작의 시대로 접어드는데,  에르나니 (산적의 두목, 사실은 아라곤의 귀족) 돈 카를로스 (Don Carlos 스페인의 왕). 돈 루이 고메츠 디 실바 (Don Ruy Gomez di Silva 스페인의 대공) 엘비라 (Elvira 그의 후견을 받는 처녀 <Ernani_Elvira's aria 에르나니 엘비라의 아리아>

여섯번째 오페라 <두 명의 포스카리>를 졸작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께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수작은 아닙니다.<에르나니>에서 베르디와 호흡을 맞추고, 이후 자주 함께 작업을 하게 되는 대본가 프란체스코 피아베가 운문 작업을 했습니다. <두 명의 포스카리>라고 함은,
베니스의 총독 가문인 포스카리 가의 두 남자, 프란치스코 포스카리와 그의 아들 야코포 포스카리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깁니다. <2막 3중창, 카푸칠리, 카레라스, 리치아렐리>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 음악가 베르디, 주세페 Giuseppe Verdi(1813 ~ 1901). 그는 80세 되는 해인 1893년 오페라 팔스타프(Falstaff)를 작곡했습니다. 즐겁고도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 넘치는 오페라 였지요.
그의 마지막 곡 팔스타프는 《리골레토》(1851)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1853)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1853) 《시칠리아섬의 저녁 기도》(1855) 《시몬 보카네그라》(1857) 《가면무도회》(1859) 《운명의 힘》(1862) 《돈 카를로스》(1867) 《아이다》(1871) 《오셀로》(1887) 등과 함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걸작으로서 지금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믈로베는 베르디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미 유명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 나이에, 왜 또 오페라를 힘들게 작곡을 합니까? 그것도 엄청나게 벅찬 주제의 작곡을...”음악가로서 일생동안 완벽을 추구해온 베르디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완벽하게 작곡하려 했지만, 곡이 끝날 때면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분명 나는 한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 트라비아타 전주곡>


 

 

출처 : 엄마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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